대대손손 친일파 그 자체였던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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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은 독보적 친일파다.
그 시대에 이완용 말고도 친일파는 많았지만, 이완용처럼 확실하게 나라를 팔아치운 매국노는 없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친일 반민족행위자였다.

그런데 이완용 개인만 독보적인 게 아니었다.
이완용 부자를 놓고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완용 부자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쌍으로’ 두각을 보인 경우는 드물다.
이런 공로로 이 부자는 일본의 작위를 함께 받는 ‘가문의 영광’을 누렸다.

그의 아들 이항구는 아버지 덕을 입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적 친일 행위를 벌였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왕족을 감시할 목적으로 만든 ‘이왕직’이란 관청의 장관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1940년 이후로는 한국인들을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하는 데도 가담했다.
이를 위해 글도 쓰고 물질도 헌납했다.
그는 1941년 7월호 지에 이렇게 기고했다.

“국민의 한 사람 한 사람이 현재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좀 더 강하고 예민하게 또 그리고 명확히 자각하고 인식하여 일층 더 긴장된 기분으로 총후(銃後, 후방)의 봉공을 완수하여서 신도(臣道, 신하의 도리) 실천에 노력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항구는 “국민의 한 사람 한 사람이 현재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치열한 친일파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 가문의 친일은 2대를 이어 3대로까지 계승됐다.

이병길은 장손 자격으로 할아버지의 후작 작위를 계승했다.
이로써 이완용-이항구-이병길 3대가 일본 작위의 보유자가 됐다.

이병길도 할아버지 덕을 입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 친일파의 길을 걸었다.
그 역시 일본의 침략전쟁에 한국인들을 동원하는 데 가담했다.
이 때문에 해방 뒤, 친일파 잡는 반민특위에 체포됐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고 친일파를 보호하는 바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런데 이 집안의 문제점은 3대로 끝나지 않았다.
이완용의 증손자까지 4대째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시대에 들어서도 이 집안은 친일과 관련된 문제로 말썽을 일으켰다.
1990년대에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있었다.
해방을 계기로 상실한 친일파 조상들의 토지를 되돌려달라며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다.

해방 후에 친일파 재산이 전부 몰수된 것도 아니었다.
많이 몰수된 것도 아니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를 보호했기 때문에, 많이 몰수될 리도 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몰수 재산을, 땅값이 상승하는 틈을 타서 되돌려 받으려고 후손들이 1990년대에 나섰던 것이다.

3줄 요약
1. 4대에 걸친 친일파 집안
2. 이승만이 친일파를 보호해줌에 따라 모두 풀려남
3. 이완용은 조선을, 그의 아들과 손자는 국민을, 그의 증손자는 나라 땅을 팔아 캐나다로 이민가서 잘 먹고 잘 삼

이완용의 죽기전 아들에게 남긴 유언
“내가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으니 너는 친미파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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